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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자전 멈추기 (원소 섞기, 핵폭발, 달의 역할)

by 정보한칸 2026. 2. 25.

지구 자전 멈추기 (원소 섞기, 핵폭발, 달의 역할)
지구 자전 멈추기 (원소 섞기, 핵폭발, 달의 역할)

 

지구에 있는 모든 원소를 한꺼번에 섞으면 어떻게 될까요? 초등학생 때 만화를 보다가 문득 떠올렸던 이 황당한 질문이, 알고 보니 행성 과학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구가 폭발했다가 다시 뭉치면 정말 원래대로 돌아올까요? 그리고 만약 인류가 핵폭탄으로 지구의 자전을 멈추려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폭탄이 필요할까요? 저는 이 질문들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1. 원소를 다시 섞으면 지구는 원래대로 돌아올까?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을 원소 단위로 쪼개서 다시 섞는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철, 산소, 규소, 알루미늄 같은 원소들이 뒤섞인 거대한 구름이 우주에 떠 있는 모습이죠. 이 상태에서 중력이 작용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지금과 비슷한 층상 구조의 행성이 만들어집니다. 중력에 의해 무거운 원소들은 중심부로 가라앉고, 가벼운 원소들은 표면이나 대기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철과 니켈 같은 고밀도 금속은 핵을 형성하고, 규산염 광물들은 맨틀과 지각을 구성하며, 산소와 질소는 대기층을 이루게 되죠.

 

흥미로운 점은 화학 반응의 관점입니다. 지구에 산소가 유독 많기 때문에 금속 원소들이 빠르게 산화물이나 황화물 형태로 결합하겠지만,불활성 기체라 불리는 아르곤이나 네온 같은 원소들은 그대로 대기에 남게 됩니다.이들은 최외각 전자껍질이 안정적으로 채워져 있어, 다른 원소와 결합하려는 경향이 거의 없는 '완벽하게 독립적인' 성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기 지구가 정확히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플래네테시멀(planetesimal)이라는 작은 천체 조각들이 계속 충돌하면서 뭉쳐졌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위치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환되어 표면이 용융 상태를 유지했죠. 여기에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열까지 더해져 지구는 오랜 시간 뜨겁게 달궈진 상태로 분화되었습니다.

Neon atom Bohr model (네온 원자의 전자 껍질 구조)
Neon atom Bohr model (네온 원자의 전자 껍질 구조)

2. 핵폭탄으로 지구 자전을 1초 늦추려면?

지구의 자전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까요? 지구가 회전하면서 가진 회전 운동 에너지는 약 10의 29승 줄(joule)에 달합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에너지가 10의 13승 줄 정도였으니, 지구 자전을 완전히 멈추려면 원자폭탄 1경 개가 필요한 셈입니다.

 

좀 더 현실적인(?) 계산도 있습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인 차르 봄바(Tsar Bomba)를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이 폭탄은 히로시마 원폭의 약 3,800배 위력을 지녔습니다. 지구의 하루를 단 1초만 늦추려 해도, 이 차르 봄바를 적도를 따라 25미터 간격으로 약 10억 개 설치해서 동시에 터뜨려야 합니다.

 

제가 이 계산을 처음 봤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구가 얼마나 거대한 시스템인지 실감하게 되더군요. 25미터마다 수소폭탄을 심는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 시나리오인지 상상이 되시나요? 지구 둘레가 약 4만 킬로미터니까 말 그대로 지구 표면을 폭탄으로 도배하는 셈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가운동량 보존 법칙입니다. 만약 2경 개의 폭탄으로 지구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지구와 달을 포함한 전체 가운동량이 보존되어야 하므로 달이 지금보다 훨씬 먼 궤도로 멀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2004년 수마트라 대지진 때 지구의 자전 속도가 2.68 마이크로초 빨라진 사례가 NASA의 GPS 데이터로 확인되었습니다.

"가운동량 보존 법칙이란 회전하는 시스템의 에너지가 일정하게 유지되려는 성질로, 회전 반경이 변하면 그에 맞춰 회전 속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물리 법칙입니다."

3. 달이 없으면 지구 자전축은 요동친다

제가 가장 놀랐던 건 달의 역할이었습니다. 달은 단순히 밤하늘을 밝히는 위성이 아니라, 지구 자전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종의 '중력 고정 장치'였던 것입니다. 지구는 현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데, 이 각도가 수백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달의 중력 때문입니다.

달과 태양이 지구에 가하는 조석력(tidal force)이 절묘한 평형을 이루면서 자전축을 붙잡아주는 것이죠. 여기서 조석력이란 천체 간 중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변형력을 말하며, 우리가 경험하는 밀물과 썰물도 이 힘 때문에 생깁니다.

 

반대 사례가 바로 화성입니다. 화성에는 달만큼 큰 위성이 없어서 자전축이 빈번하게 흔들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성 극지방 얼음을 단층 촬영으로 분석한 결과, 나무의 나이테처럼 불규칙한 퇴적층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화성의 자전축이 때로는 거의 누워버렸다가, 때로는 수직에 가깝게 서기도 하면서 기후가 극단적으로 변했음을 시사합니다.

 

자전축이 누우면 한쪽 반구는 수십만 년간 태양을 직접 받아 얼음이 녹아 대홍수가 발생하고, 반대쪽은 영구 동토로 변합니다. 실제로 화성 표면에서 거대한 홍수의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는 자전축 변화로 인한 극단적 기후 변동의 증거로 해석됩니다. 최근 외계 생명체 연구에서 '행성 옆에 큰 위성이 있는가'가 중요한 거주 가능 조건으로 떠오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4. 뒤집힌 금성과 누운 천왕성의 비밀

태양계에는 자전축이 심하게 뒤틀린 행성들이 여럿 있습니다. 금성은 자전 방향 자체가 거꾸로입니다. 다른 행성들이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는 동안, 금성은 동에서 서로 돕니다. 이를 역행 자전(retrograde rotation)이라 부르는데, 과거에 거대한 천체와 충돌하면서 자전축이 완전히 뒤집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금성에 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구는 테이아(Theia)라는 화성 크기의 원시 행성과 충돌해 달이 생겼지만, 금성은 태양에 더 가까워 중력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설령 충돌로 파편이 생겼더라도 태양의 강한 중력에 모두 빼앗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천왕성은 더 극단적입니다. 자전축이 거의 98도 기울어져 있어서, 공전 궤도에 누운 채로 뒹굴듯 돌고 있습니다. 투명한 쟁반 위에서 공이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천왕성의 공전 주기가 84년이니, 한쪽 극은 42년간 낮이고, 반대쪽 극은 42년간 밤이 계속되는 극단적인 계절 변화를 겪습니다.

 

저는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지구가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당한 크기의 달, 안정적인 자전축,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 이 모든 조건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덕분에 우리가 지금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를 원소 단위로 쪼개서 다시 섞든, 핵폭탄으로 자전을 바꾸려 하든, 결국 중력과 물리 법칙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달이라는 천연 안정 장치를 가진 지구는 정말 행운아였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생각하면, 외계 생명체를 찾는 일이 왜 그리 어려운지 이해가 됩니다. 혹시 여러분도 밤하늘의 달을 볼 때, 이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 달을 볼 때마다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GDvdflOufE&t=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