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밤하늘을 볼 때마다 별빛이 수십억 년 전의 빛이라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은하수가 실은 다른 은하를 집어삼킨 '식인 은하'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별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은하 곳곳에는 60억~90억 년 전 사라진 은하의 흔적이 별의 흐름으로 남아 있고, 그 중심에는 '헬미 스트림'이라는 이름의 화석 같은 구조가 떠돌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우리 은하 자체도 지금 이 순간 초당 수백 킬로미터 속도로 정체불명의 거대 인력체에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은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합병의 잔혹한 생존법
우주에서 은하는 절대 혼자 살지 않습니다. 크기가 비슷한 은하끼리 만나면 하나로 합쳐지지만, 작은 은하가 큰 은하를 만나면 그대로 찢겨 흡수됩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은하 속 별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우주 공간으로 버려지고, 살아남은 별들은 큰 은하의 후광 주변에 '별의 흐름'이라는 꼬리처럼 남게 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온화한 은하수가 사실은 수십억 년 동안 약육강식을 반복한 결과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요.
1999년,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아미나 헬미는 은하 헤일로를 연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은하수 주변 별 절반이 다른 별들과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겁니다. 화학 성분도 달랐고, 움직임도 달랐습니다. 이건 명백히 외부에서 온 별이라는 증거였습니다. 헬미와 연구팀은 유럽우주국의 가이아 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이 별들이 과거 우리 은하에 흡수된 외소 은하의 잔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구조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헬미 스트림'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헬미 스트림은 직경 7만~10만 광년 규모의 은하였고, 질량은 태양의 약 700억 배에 달하는 작은 마젤란 구름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크기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별의 수는 600개 이상이지만, 실제로는 최대 1만 개 이상의 별이 이 흐름에 속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별들이 은하 전체에 흩어져 있어서 일일이 찾아내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마치 바닷속에서 특정 물방울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2. 암흑물질의 어머니, 베라 루빈과 회전 속도의 비밀
은하 합병을 이해하려면 암흑물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은 은하의 회전 속도를 측정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은하 바깥쪽 별들이 중심부 별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던 겁니다. 뉴턴의 중력 법칙에 따르면 바깥쪽으로 갈수록 속도가 느려져야 정상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질량이 은하를 감싸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베라 루빈은 1928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2016년까지 88년을 살면서 암흑물질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당시는 여성 과학자가 극히 드물던 시대였고, 그는 평생 성차별과 싸우며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업적을 '우주에서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필적한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베라 루빈의 이야기가 과학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서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증명했고,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던 여성 과학자들의 길을 열었습니다.
암흑물질은 빛을 내지도, 반사하지도 않지만 중력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현재 추정으로는 우주 질량의 약 85%가 암흑물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헬미 스트림 같은 별의 흐름을 연구하면 암흑물질 할로의 모양과 질량 분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구조를 암흑물질 연구의 열쇠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암흑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아예 암흑물질 자체를 부정하고 중력 법칙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3. 보이지 않는 손, 거대 인력체의 정체
우리 은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초당 약 630킬로 미터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요.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균등하게 팽창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특정 방향으로 쏠림 현象이 관측됩니다. 1980년대, 천문학자들은 은하수를 포함한 수만 개의 은하가 처녀자리 초은하단 너머 약 2억 광년 떨어진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미지의 중력원을 '거대 인력체(Great Attractor)'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거대 인력체가 은하수의 먼지와 별 뒤에 숨어 있는 '회피 영역(Zone of Avoidance)'에 위치한다는 점입니다. 광학 망원경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지역입니다. 과학자들은 21센티미터 파장의 중성 수소선을 관측하는 전파 망원경과 적외선 조사를 동원해 이 지역을 들여다봤고, 그 결과 직각자리 은하단과 노마 클러스터라는 거대 구조가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거대 인력체라는 개념 자체가 SF 영화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손이 우리 은하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났거든요. 하지만 데이터는 명백했습니다. 2020년에는 남극 벽이라는 또 다른 거대 구조가 발견됐는데, 이건 최소 7억 광년에 걸쳐 펼쳐진 은하와 가스 구름의 집합체입니다. 거대 인력체와 남극 벽, 그리고 우리가 속한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은 모두 연결돼 있고, 서로의 중력이 우주의 국지적 팽창과 은하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4. 사라진 은하의 흔적이 말해주는 것들
헬미 스트림에 속한 별들은 대부분 110억~130억 년 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철 함량이 매우 낮고, 이미 적색거성 단계를 지난 늙은 별들입니다. 이 별들을 분석하면 초기 우주의 별 형성 과정과 은하 진화의 초기 단계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흐름 덕분에 과학자들은 은하 중심의 별 헤일로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구상성단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추론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10년에는 헬미 스트림에 속한 적색거성 HIP 13044 주변에서 외계행성이 발견됐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당시 과학계는 흥분했습니다. 다른 은하에서 온 별의 행성을 처음 발견한 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몇 년 후, 이 발견은 기술적 오류로 판명됐습니다. 행성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이 사건은 과학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데이터 해석의 오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그래서 반복 검증이 중요합니다.
헬미 스트림에서 아직 외계행성이 발견되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별들이 너무 오래돼서 행성이 이미 파괴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철 함량이 낮으면 행성 형성 자체가 어렵습니다. 셋째, 은하 합병 과정에서 많은 행성이 궤도를 벗어나 우주로 튕겨 나갔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가이아 망원경이나 차세대 전파 망원경을 통해 더 정밀한 관측이 이뤄지면, 언젠가는 진짜 외계행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우주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은하도 약 40억 년 후에는 안드로메다 은하와 충돌할 예정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구에서 본 밤하늘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두 은하는 서로를 찢고 뒤섞이며 하나의 거대한 타원은하로 합쳐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헬미 스트림 같은 화석 구조를 통해 과거의 합병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외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보는 별빛 하나하나에는 수십억 년의 역사가 담겨 있고, 그 별들 중 일부는 우리와 전혀 다른 은하에서 태어나 지금 이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우주는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잔혹하지만, 그렇기에 더 신비롭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