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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 해석: '12명의 외계인이 원형 문자로 전한 '인생의 목적 함수'

by 정보한칸 2026. 2. 28.

컨택트 영화 해석 (목적론, 결정론, 자유의지)
컨택트 영화 해석 (목적론, 결정론, 자유의지)

 

빛이 공기에서 물로 진행할 때 경로가 꺾이는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대부분은 "중력 때문"이라고 답하지만, 물리학에선 전혀 다른 설명이 가능합니다. 빛이 도착 지점을 미리 알고, 가장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경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능도 없는 빛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영화 '컨택트'를 보고 나서야 이 질문의 무게를 제대로 느꼈습니다.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의 강연을 통해 접한 이 영화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시간과 언어, 그리고 우리 삶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1.물리학의 두 얼굴:인과율과 목적론

영화 컨택트의 핵심은 물리학을 설명하는 두 가지 방식의 차이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은 인과율(因果律)입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따르는 순차적 진행이죠. 돌을 손에서 놓으면 중력이 작용해서 돌이 한순간씩 아래로 내려간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현상을 목적론(目的論)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돌이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는 바닥에 있을 때 위치에너지가 최소가 되기 때문이다, 즉 돌이 에너지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목적론이란 물체가 어떤 물리량을 최대 또는 최소로 만드는 경로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출처: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제가 대학 때 이 개념을 처음 배웠을 땐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돌멩이가 무슨 생각을 하나?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게 단순히 물리학 공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과율은 미분(微分)으로 표현됩니다. 현재 상태를 알면 바로 다음 순간을 계산할 수 있고, 그걸 반복하면 미래 전체가 결정되는 구조죠.

반면 목적론은 적분(積分)으로 표현됩니다. 시작과 끝 전체를 한 번에 보고, 그 사이에서 특정 값이 최소가 되는 경로를 찾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적분이란 시간 전체에 걸쳐 어떤 양을 합산하는 수학적 도구로, 순차적 진행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영화 속 외계인 헤타포드는 바로 이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이들에게는 과거-현재-미래의 구별이 없습니다. 모든 시간을 한눈에 보는 거죠.

2.원형 문자와 방사 대칭 신체

헤타포드의 문자가 원형인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우리 언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시간의 순차성이 언어 구조에 그대로 반영된 거죠. 하지만 헵타포드의 문자는 시작도 끝도 없는 완벽한 원입니다.

 

제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바로 이 문자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먹물 같은 걸로 공중에 원을 그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했어요. 저 문자엔 '다음'이 없구나, 모든 정보가 동시에 존재하는구나 싶었죠.

 

헤타포드(Heptapod)라는 이름도 의미가 있습니다. Hepta는 7, pod는 다리를 뜻하니 '일곱 다리'란 뜻입니다. 다리가 일곱 개라는 건 단순히 외형의 차이가 아닙니다. 생물학에서 이런 구조를 방사 대칭(放射對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특정 방향으로의 우선순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출처: 한국생물학회).

 

우리 인간은 다리가 두 개라서 앞과 뒤가 명확히 구분됩니다. 앞으로 걷고, 앞을 보고, 앞 사람과 대화합니다. 이 신체 구조가 우리의 시간관념을 만든 것 아닐까요? 반면 헵타포드에겐 모든 방향이 동등합니다. 앞도 뒤도 없으니, 과거와 미래의 구별도 없는 거죠.

3.페르마의 원리와 양자역학의 답

앞서 언급한 빛의 경로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빛이 공기에서 물로 들어갈 때 경로가 꺾이는 현상을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라고 합니다. 여기서 페르마의 원리란 빛이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이동할 때 시간이 최소가 되는 경로를 택한다는 법칙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빛이 어떻게 도착 지점을 미리 알까요? 빛은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모든 가능한 경로를 비교해서 최적 경로를 선택할까요? 고전 물리학에선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은 더 황당한 답을 내놓습니다. 빛은 모든 경로로 동시에 간다는 겁니다. 우리 눈엔 한 경로만 보이지만, 실제론 무수히 많은 경로를 동시에 진행하고, 각 경로마다 확률이 다를 뿐이라는 거죠. 우리가 관측하는 건 확률이 가장 큰 경로입니다.

솔직히 이 얘길 처음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험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양자역학은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중첩(重疊, superposition) 개념을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중첩이란 관측 전까지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적 특성을 말합니다.

영화에서 루이스가 헵타포드 언어를 익힌 뒤 미래를 '기억'하는 장면들이 바로 이와 연결됩니다. 헤타포드에게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동시에 존재하는 겁니다.

4.세월의 책과 자유의지의 역설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루이스가 딸의 죽음을 미리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소설에선 '세월의 책(Book of Ages)'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내 인생 전체가 적힌 책이 눈앞에 있다면 어떨까요?

책을 읽다가 "오늘 저녁 커피숍에 들른다"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대로 커피숍에 가야 할까요, 아니면 자유의지를 증명하기 위해 집으로 곧장 가야 할까요?

 

제 생각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세월의 책이 존재한다면, 제가 "책과 다르게 행동하겠다"라고 결심하는 것조차 이미 책에 적혀 있을 겁니다. 결정론(決定論)적 세계에서 자유의지는 환상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결정론이란 우주의 모든 사건이 이전 상태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루이스는 딸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을 걸 압니다.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그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거죠. 그럼에도 그 길을 걷습니다. 왜일까요?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미래를 안다는 건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헤타포드의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는 건, 이미 정해진 길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루이스의 선택은 역설적입니다:

  • 딸의 죽음을 알지만, 딸과의 시간은 아름답다
  • 고통을 알지만, 사랑은 그 고통보다 크다
  • 미래가 정해져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다

김범준 교수님께서 강연 마지막에 던진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여러분의 목적 함수는 무엇인가요?" 목적 함수(目的函數, objective function)란 최적화하려는 대상이 되는 수학적 표현입니다. 행복을 최대화할 건가요, 고통을 최소화할 건가요?

저는 컨택트를 보기 전까진 당연히 행복 최대화라고 답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루이스는 고통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으니까요. 어쩌면 인생의 목적 함수는 행복도 고통도 아니라, 그저 '충만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속 루이스의 딸 이름은 한나(Hannah)입니다. 앞에서 읽어도 Hannah, 뒤에서 읽어도 Hannah. 시간의 방향이 없다는 헵타포드의 세계관을 이름으로 구현한 거죠. 이런 디테일을 발견할 때마다 감탄했습니다.

물리학을 공부한 테드 창 작가는 SF를 쓸 때 항상 "만약 ~라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컨택트의 질문은 이거였죠. "만약 시간을 순차적으로 가 아니라 전체로 본다면?" 그 질문 하나가 언어, 문자, 신체 구조, 세계관, 자유의지까지 모든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건 아니지만, 부모가 된다는 건 어쩌면 루이스와 비슷한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다칠 걸 알지만 막을 수 없고, 아이의 고통이 내 고통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소설 속 표현대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고통은 생생하게 느끼는 팔"이 생기는 거죠.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I3xRVKfn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