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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우연의 과학 (양자 얽힘, 공시성, 파울리 효과)

by 정보한칸 2026. 2. 24.

양자역학과 우연의 과학 (양자 얽힘, 공시성, 파울리 효과)
양자역학과 우연의 과학 (양자 얽힘, 공시성, 파울리 효과)

 

연애할 때 그 사람 생각을 했는데 정말 전화가 오면,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오래된 친구를 문득 떠올렸는데 그날 저녁 그 친구한테 연락이 온 적이 있었죠. 그냥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의문을 과학자들도 오래전부터 품어왔고, 놀랍게도 양자역학이라는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습니다. 천문학자 강성주 박사는 최근 저서를 통해 양자 얽힘과 인간이 경험하는 우연 사이의 연결고리를 탐구했습니다.

1. 양자 얽힘, 우연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양자역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 일상의 직관과 하나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벽을 향해 달려가면 부딪힐 뿐이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이론적으로 벽을 통과할 확률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 확률이 실현되는 시간이 우주의 나이보다 길어서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중요한 건 '확률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뉴턴 시대에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지배했습니다.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확률론적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죠.

 

그런데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 얽힘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양자 얽힘이란 두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의 상태가 결정되는 순간 다른 쪽도 즉시 결정되는 현상입니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정보가 연결되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배웠는데, 양자 얽힘은 그 상식을 뒤집는 현상이었으니까요.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과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이 양자 얽힘에서 우연의 비밀을 찾으려 했습니다. 융은 '공시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지만 의미 있게 연결된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파울리는 노벨상을 받은 천재 물리학자였지만,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기계가 고장 나고 꽃병이 깨지는 이른바 '파울리 효과'로 유명했습니다. 단순히 재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파울리 본인조차 이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융과 함께 연구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양자 얽힘은 미시 세계 입자들의 현상인데, 이걸 거시 세계의 인간 경험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과학적 비약 아닐까요?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양자 신비주의'를 경계합니다.

 

하지만 융과 파울리는 이를 일대일 대응으로 보려 한 게 아니라, 과학적 사고의 틀을 확장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확률적으로만 설명되던 우연이라는 현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적 탐구였던 거죠.

2. 파울리 효과와 의미 있는 우연의 탐구

파울리 효과는 단순한 일화가 아닙니다. 여러 물리학자들이 실제로 목격하고 기록한 현상입니다. 파울리가 실험실에 들어서면 멀쩡하던 장비가 고장 나고, 세미나실에서조차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있으면 유독 전자기기가 말을 안 듣는 친구가 있는데, 그냥 우연의 연속일까요, 아니면 뭔가 우리가 모르는 패턴이 있는 걸까요?

융은 이런 현상을 통계학적으로도 분석하려 했습니다. 인간은 패턴 인식에 뛰어난 존재입니다. 구름에서 토끼를 보고, 자동차 전면부에서 사람 얼굴을 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파레가돌리아 현상이라고 부르죠. 그렇다면 우연도 우리 뇌가 만들어낸 패턴 착각일 수 있습니다. 수만 번의 평범한 우연은 잊어버리고, 딱 한 번 맞은 '의미 있는 우연'만 기억하는 생존 편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융과 파울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심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이 층위적으로 쌓이면서 우연이 만들어진다고 봤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누군가를 간절히 생각하는 심리 상태가 있고, 그 사람도 우연히 저를 떠올리는 물리적 행동(전화 걸기)이 있고, 이 두 층위가 겹쳐서 '의미 있는 우연'으로 경험된다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이론은 아니지만, 제 경험상 이런 설명이 단순한 확률론보다 더 와닿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양자 얽힘은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스마트폰 반도체, MRI 촬영, 양자 통신 암호화 기술이 모두 양자역학 원리를 활용합니다. 2022년 노벨상을 받은 이유도 이론이 아니라 실용화 기여 때문입니다. 특히 양자 통신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누군가 정보를 가로채려 하면 얽힘이 깨지면서 즉시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삼체'에서 나온 것처럼 먼 우주와의 실시간 통신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현재 화성과 지구 간 통신은 편도 20분이 걸리지만, 양자 통신이 완성되면 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느낀 그 '우연'도 공시성일까요? 솔직히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또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질문의 힘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빛은 속도가 있을까?"라고 물었고, 어느 초등학생이 "불을 끄면 빛은 어디로 가나요?"라고 물었듯이, 우리가 겪는 우연에도 질문을 던질 권리가 있습니다.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말해주는 과정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여정입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다시 양자역학으로 이어진 혁명은 모두 "정말 그럴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제 경험상, 우연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의미를 찾으려 할 때 새로운 기회가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게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공시성인지, 아니면 제 뇌가 만들어낸 패턴 인식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우연을 통해 제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질문의 힘은 유효합니다. AI는 쌓인 데이터를 조합할 뿐, 천동설을 지동설로 뒤집는 직관적 도약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우연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 말입니다. 다음번 누군가 생각했는데 전화가 오면, 그냥 넘기지 마시고 한 번 멈춰 서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우연이 내게 말하려는 건 뭘까?" 그 질문이 여러분의 삶을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Mc6IOHX35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