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천문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안드로메다는 우리 은하 안에 있다"라고 확신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어릴 적 은하철도 999에서 본 안드로메다가 사실은 우리 은하 밖 250만 광년 거리의 거대한 별의 도시였다는 걸 알고 나니, 그때 그 만화 속 기차가 얼마나 먼 여행을 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1. 변호사에서 천문학자로, 허블의 반전 드라마
일반적으로 천문학자라고 하면 어릴 때부터 별만 바라보며 자란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만, 에드윈 허블은 달랐습니다.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가 천문학계에 뛰어든 건 여덟 살 생일 밤 할아버지가 보여준 망원경 속 별빛 때문이었죠.
제가 흥미로웠던 건 허블의 독특한 캐릭터였습니다. 다른 천문학자들이 등산화에 점퍼 차림으로 천문대를 오르내릴 때, 그는 언제나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손에는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조각 같은 외모에 옥스퍼드의 두뇌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던 이 엄친아가, 해발 1700m 산 정상에서 겨울밤마다 얼어붙는 손끝을 견디며 유리 건판을 들여다봤다는 사실이 드라마틱하게 다가왔습니다.
1923년 어느 밤, 허블은 안드로메다 성운을 관측하던 중 이상한 변화를 포착했습니다. 신성이라고 표시해둔 별이 계속 밝아지고 있었던 겁니다. 보통 신성이라면 밝은 빛을 낸 후 서서히 희미해지는 게 정상인데, 이 별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죠. 허블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메모를 고쳐 썼습니다. "VAR!" 느낌표까지 찍어가며 말이죠. 그가 발견한 건 변광성, 즉 규칙적으로 밝기가 변하는 별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제가 궁금했던 건 "별이 깜빡이는 것만으로 어떻게 거리를 알 수 있지?"라는 거였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변광성은 가로등처럼 일정한 주기로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데, 얼마나 자주 깜빡이는지를 알면 그 별이 실제로 얼마나 밝은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밝기를 알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겉보기 밝기와 비교해서 거리를 정확히 구할 수 있죠. 마치 멀리 있는 가로등이 가까운 가로등보다 어둡게 보이는 원리와 같습니다.
허블이 계산한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는 약 50만 광년이었습니다. 당시 하버드 천문대장 셰플리가 추정한 우리 은하 지름 30만 광년을 훌쩍 넘는 수치였죠. 이게 무슨 의미냐면, 안드로메다는 우리 은하 밖에 존재하는 완전히 독립된 또 다른 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2. 망원경도 못 만진 여성 과학자, 리빗의 하늘의 자
허블이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한 여성 과학자의 공로가 컸습니다. 헬리에타 리빗, 그녀는 하버드 천문대에서 일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망원경 사용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녀를 '컴퓨터', 살아있는 계산기라고 불렀죠.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 화가 났습니다. 시간당 30센트, 남성 천문학자 월급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좁은 방에서 유리 건판만 들여다봐야 했던 환경 말입니다.
하지만 리빗은 청각 장애를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빛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수천 장의 건판, 수십만 개의 별빛 속에서 그녀는 하나의 규칙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였죠. 변광성이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주기가 길수록 그 별이 실제로 더 밝다는 법칙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허블만 영웅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생각에는 리빗의 이 발견이 없었다면 허블도 아무것도 못 했을 겁니다. 리빗이 만든 '하늘의 자'가 있었기에 허블은 안드로메다 속 변광성을 측정해서 거리를 계산할 수 있었던 겁니다. 집단 지성의 승리라고 봐야 맞습니다.
허블은 자신의 발견을 셰플리에게 편지로 알렸습니다. "당신이 흥미로워할 만한 소식이 있습니다. 저는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셰플리는 평생 신념이 무너지는 걸 느꼈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내 우주를 산산조각 낸 편지야."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학자로서 자신의 이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의 고통과 동시에,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셰플리도 사실 대단한 과학자였습니다. 태양이 우리 은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밝혀낸 사람도 그였으니까요. 안드로메다 위치는 틀렸을지 몰라도, 그의 다른 공로들이 저평가되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허블의 발견으로 우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해졌습니다. 우리 은하 밖에도 수천억 개의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참고로 허블이 계산한 50만 광년은 현대 측정치인 약 250만 광년과 차이가 큽니다. 당시 기술적 한계로 인한 오차였죠. 하지만 중요한 건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은하 밖에 또 다른 은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궁금했던 또 다른 질문은 "그럼 안드로메다와 우리 은하는 충돌하나요?"였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은하 충돌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서요. 실제로 안드로메다는 초속 120km로 우리 은하를 향해 다가오고 있고, 약 40억 년 후 충돌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물론 그때쯤이면 우리는 없겠지만요.
한 가지 더 철학적으로 생각해볼 지점도 있습니다. 만약 안드로메다에 변광성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믿고 있을까요? 과학적 발견에는 이런 우연성도 따른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결국 100년 전 허블과 리빗이 보여준 건 단순히 우주의 크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단서 하나가 인류의 우주관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위대한 발견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죠. 지구는 광활한 우주 속 먼지 같은 존재지만, 바로 그 먼지 위에서 우주의 진실을 밝혀낸 인류의 집요함이 저는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