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기지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지어졌을까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보면서 제일 답답했던 게 바로 발해 기지의 미로 같은 구조였습니다. 층마다 평면도가 다르고, 계단 내려갈 때마다 어디로 연결될지 예측이 안 됩니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이게 의도된 설계라고 말합니다. 관객이 공간을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긴장감이 살아난다는 겁니다.
1.미로처럼 설계된 발해 기지, 실제로 가능할까
일반 건물은 1층, 2층 올라가도 기둥 위치나 복도 구조가 비슷합니다. 그래야 시공도 쉽고 사람들이 길을 찾기도 편하니까요. 그런데 발해 기지는 한 층 내려갈 때마다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집니다. 대원들도 계속 모니터를 보면서 자기 위치를 확인해야 할 정도입니다.
저는 처음엔 이게 그냥 드라마적 과장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현준 교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더군요. 여행 갈 때 도로망 파악 안 되면 그 도시가 두렵잖아요. 언제 길 잃을지 모르니까요. 드라마 속 기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이 복잡할수록 관객은 더 불안해하고, 그게 스릴러 장르에서는 장점이 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됩니다. 극한 환경인 달에서 동선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거든요. 비상 상황에서 탈출도 어렵고, 유지보수도 힘듭니다. 하지만 드라마니까 허용되는 설정이죠.
2.우주복 쓰면 들리는 건 숨소리뿐
우주복 착용 장면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게 사운드 연출입니다. 헬멧 쓰는 순간 외부 소리가 싹 사라지고 배두나 씨의 숨소리만 들립니다. 이게 생각보다 엄청난 고립감을 만들어냅니다. 관객 입장에서도 답답하고 불안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더군요.
실제로 달에서 우주복 입으면 헬멧 선바이저도 진하게 썬팅돼 있습니다. 햇빛이 너무 강하니까요. 시야도 제한되고, 들리는 것도 자기 숨소리뿐이니 정말 갇힌 느낌일 겁니다. 드라마에서는 헬멧 안쪽에 라이팅을 달아서 얼굴이 보이게 했는데, 솔직히 이건 연출용이죠. 실제론 빛 반사 때문에 시야 방해만 될 겁니다.
카메라 구도도 재밌었습니다. 어떤 장면은 주인공 시점에서 찍고, 어떤 장면은 뭔가가 주인공을 지켜보는 시점으로 찍습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앵글도 자주 나오는데, 이게 '뭔가 숨어 있다'는 느낌을 계속 줍니다. 저는 공포물 잘 못 보는데도 끝까지 봤어요.
3.달 표면의 극단적 명암, 블랙 앤 화이트
'고요의 바다'에서 달 표면 장면 보면 햇빛 받는 곳은 새하얗고, 그림자는 칠흑처럼 어둡습니다. 대기가 없어서 빛이 산란 안 되니까요. 아폴로 우주인들이 찍어온 사진도 똑같습니다. 너무 밝고 어두운 부분을 한 사진에 담으려니 노출 시간을 짧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밤하늘 별이 안 찍혔던 겁니다.
이 극단적인 명암 대비가 스릴러 장르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밝은 복도에서 어두운 계단 내려다볼 때, 그 밑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공포감이 장난 아닙니다. 배두나 씨가 어두운 복도로 걸어갈 때 카메라가 밑에서 따라가는 장면은 정말 소름 돋았습니다. 마치 뭔가가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블랙 앤 화이트 설정이 '고요의 바다'의 핵심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칼라풀한 우주였다면 이런 긴장감은 절대 안 나왔을 겁니다.
4. 드라마는 단독 기지, 현실은 환승 정거장 그리고 아르테미스 계획
드라마 속 발해 기지는 한국 단독 기지로 나옵니다. 처음엔 국제팀인 줄 알았는데 한국인만 나와서 좀 의아했어요. 하지만 실제 미래는 다릅니다. NASA의 아르테미스 계획은 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여러 나라가 협력해서 달 표면 기지를 운영하는 구조입니다.
우리나라도 여기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누리호가 올해 달 극지방 그림자 지역을 촬영해서 얼음을 찾는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드라마에서 물 찾으러 달 가는 것처럼, 실제로도 물(얼음)이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달에서 물 확보하면 식수로도 쓰고 수소 연료로도 쓸 수 있으니까요.
'고요의 바다' 배경이 된 고요의 바다(Mare Tranquillitatis)는 실제 지명입니다. 아폴로 11호가 착륙했던 곳이죠. 다만 저위도 지역이라 얼음 찾기는 어렵습니다. 극지방 영구 그림자 지역이 더 가능성 높습니다.
드라마에서 지하 깊숙이 기지를 만든 이유도 일리 있습니다. 달 표면은 낮엔 100도 넘고 밤엔 영하 100도 이하로 떨어집니다. 보름 동안 밤이 계속되니 지하가 온도 유지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엔 '왜 이렇게 깊이 팠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합리적인 설정이더군요.
'고요의 바다'는 SF 스릴러로서 공간 연출과 사운드 디자인이 정말 탁월했습니다. 미로 같은 기지 구조, 우주복 안의 고립된 숨소리, 달 표면의 극단적 명암이 만들어낸 긴장감은 다른 우주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수준이었죠. 물론 건축적으로는 비효율적이고, 단독 기지 설정도 현실과 다릅니다. 하지만 드라마니까 즐기면 됩니다. 실제 달 탐사는 국제 협력으로 진행 중이고, 우리 다누리호도 그 일부입니다. 드라마 보고 나서 다누리호 소식 찾아보시면 더 재밌을 겁니다.